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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재난이 일상이고 일상이 재난인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정치, 시민의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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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는 네 명의 전문가를 초빙해 『부천시 공공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 공청회를 열었다. 올해 1월 15일 부천시민 8천 3백 명이 서명해 제출한 조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는 먼저, 책임 있는 자세로 시민의 요구를 귀담아들으려는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날 공청회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나백주 교수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부천시 서남쪽에 집중하여 편중되어 있다”면서 “원도심과 오래된 공업지역인 동쪽과 북쪽은 상대적으로 의료 접근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천시에는 상급종합병원과 전문병원이 있어 중증도가 높은 질환에 대한 관내 이용은 높지만, 중증도가 낮은 지역 내 의료필요 문제 대응은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의료원 의료정책실 유창훈 실장은 “필수의료 제공 측면에서 부천시 공공의료원 건립 추진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며 “공공의료원은 향후 부천시의 보건과 복지정책 측면에서 다양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부천시민의 건강수준 향상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임준 교수는 부천시의 병상수는 인구 대비 적지 않으나 취약한 배후 진료 역량으로 인해 “중증 응급 환자의 원내 사망률 등 필수의료 관련 건강 수준이 경기도 내 비교 도시에 비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정부에서 상급종합병원을 중증 환자 진료 중심으로 구조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에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중등증 환자를 담당할 우수한 2차 병원의 역할이 중요한데 부천에는 3차 병원과 소규모 병원이 많고 2차 종합병원 역량은 취약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인구가 많은 도시일수록 의료자원이 과잉 공급되어 자원의 중복성과 비효율이 발생하는데, 감염병 대유행 같은 보건의료 재난은 오히려 도시가 훨씬 심각하여 의료취약계층과 미충족 의료비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시민 모두에게 최고 수준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수행하는 국가의 보건의료 행위가 공공보건의료이며,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시민과 함께 하는 좋은 지역 공공병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 4인의 발제 후 이어진 질의는 크게 세 가지 쟁점을 드러냈다. 첫 번째는 부천시 공공의료원 설립의 시급성에 관한 문제다. 행정복지위원 중 어느 누구도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의원은 없었다. 그러나 공공의료원 설립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구심을 표했다. 이에 대해 유창훈 서울의료원 의료정책실장은 “노인이나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감염이나 응급 상황에서의 취약계층 진료 등 공공의료 제공 측면의 한계를 단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정책적 개입”부터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내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위해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수립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 쟁점은 부천시 공공의료원의 운영에 관한 문제다. 기존 공공병원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만성 적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공공병원 운영상의 매너리즘, 방만 경영의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에 대해 인천광역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현재 지방 공공병원의 운영 적자는 대개 기존 공공병원이 접근성 낮은 곳에 최소 규모로 건축되어 주민들의 병원 이용이 불편하고, 과잉 비급여 진료가 일상화된 민간병원과 달리 양질의 적정진료를 수행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접근성을 높여 많은 시민들이 양질의 적정진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공공병원 운영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재정계획이 실행되도록 요구하며, 병원 운영 거버넌스의 안정화, 시민의 견제를 통해 방만경영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 번째 쟁점은 공공병원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차이다. 일부 의원은 “시민으로서 지금까지 의료 이용에 불편함이 없었다”며 실제 존재하는 의료 사각지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공공병원을 짓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마치 무리해서 할부로 자동차를 살 것이냐 버스를 타고 다닐 것이냐의 문제와 같다”고 말하는 등 부적절한 비유를 들어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재난이 일상이고 일상이 재난인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뒤집어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를 돌보려는 노력, 민주시민들의 연대, 약자를 위한 정치다. 공공의료는 바로 그 모두를 돌보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민의 노력 위에 세워져야 한다.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가 긍정적인 결론을 내려주기를 촉구한다.
2024년 12월 5일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